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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아끼는
기독교인의 성경 사랑 이야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2,000여 역사의 기독교와 77년을 살아온 모태 기독교
인의 기독교에 관한 생각을 성경과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리하였다. 글은 30여 지속해온 여의도침례교회 ’이태웅
목사님 부부성경반‘이 2018년 해체된 마지막 발표를 SNS
상에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다. 글의
용은 전적으로 성경공부를 통한 개인의 생각을 정리한
임을 밝혀 둔다.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나 이런 글을 썼을
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기를 바란다.
1. 나는 모태 독교인이다.
1942년 평양에서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2019년
재까지 줄곧 기독교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1, 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부산과 서울에 살면서도 언제나 기독교인이었다.
6, 25가 발발하기 직전 양에 있는 연화동 교회를 다닐
시 아마도 제9 인민학교 1학년이었을 여덟 때쯤으로 기억
하는데, 교회 어느 골목길에서 교회의 청년이 거지로
억되는 앉은뱅이에게 자기 웃옷을 벗어 입히고 열심히 기도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외쳤으나 어나지 않는
경을 목격했었 일이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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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경의 진리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무조건 믿고 살아
기독교인이다. 아마도 관적인 기독교인이었을 이다.
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일 교회예배에는 거의 개근할 정도로
참석하였고 젊은 시절에는 학생회장, 주일학교 반사, 성가대원
등 교회 활동에 매우 열성적이었었다. 아마도 나보다 더 열성
적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1972년 결혼했고 30대 중반쯤 되었을 부모님이 장로와
권사로 시무하시던 교회에서 목사 측과 장로 사이에 렬한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개의 교회로 쪼개졌다. 나는 장면
을 목격하면서 그 교회를 떠났다. 나는 그때부터 앞으로 교회
예배에는 빠지 않고 참석할 것이지만 교회 활동에는 일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게 된다. 주일마다 교회
교회를 배회하 당시 살고 있던 집과 가까이 여의도침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출석하고 있다.
그런 중에 40대 중반 이후 지금 주일예배에 출석하고 있는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우연한 기회에 ‘이태웅 목사님 부성경
반’에 합류하게 되어 30여 동안 성경을 체계적으로
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고
항상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계속하면 할수록 내가 그때까지 습관적으
믿어왔던 기독교에 대해 내적 갈등이 기기 작했
다. 성경은 분명히 진리이고 하나님은 분명히 계신 과연
나님을 믿는다는 도들과 성도들 이끄는 지도자들은 과연
바른길을 가고 있는 걸까? 리가 종종 들었었던 ‘하나님을 믿
받고 장수 하세요!’라 외침은 바른 외침이었던
가? ‘한국 교회 가장 문제는 기복신앙입니다.’라고 강단에
설교하면서 계속 기복신앙을 더욱 깊게 심어 주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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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을 어떻게 각해야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을
되었다.
나는 싸 나 쪼개진 교회를 떠나기 전까지는 평양에서부터
장로교회에 줄곧 출석했었고, 지금까지는 침례교회에
석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한 연세대학교와 38년 교수 생
활을 이화여자대학교는 감리교 계통이니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를 두루 경험한 이다. 그래
나는 현재 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기독교
인이지 침례 교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이
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 한다
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
십자가에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
느냐’(고전1:12-13)고 사도바울의 씀이 생각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성경을 직접 보고 올바 판단해야
독교인의 의무가 되어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욥은 친구들과의 격렬한 논쟁이 끝난 폭풍우
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 엎어져서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뵈옵나이다.’(욥42:5) 나는 욥의 고백처럼 우리도 설교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성경 씀을 직접 봄으로 주를
눈으로 보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나는 2003년 손자가 태어났을 ‘손자들에게 주는 할아
버지의 10계명’이 걸 만들어 둘째 자가 초등학교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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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인 2017년에 전달한 적이 있다. 계명이 ‘참 하나
님을 믿어라.’였다.
<손자 다빛에게! 할아버지가 다빛에게 주는 십계명 번째 계명 “참
하나님을 믿어라.”에 관해 이야기하자. 계명은 알파요 오메가, 다시
말해서 처음이요 나중이다. 계명 “참 하나님을 믿어라.”는 머지
아홉 가지 계명을 모두 품는 계명이요 전부다. 전교조 ‘참교육’이라는
단어가 거슬 ‘참믿음’, ‘참 하나님’이라는 말 사용하기 망설
졌으나 좋은 말이 없어 그대로 사용하기 했다. 선황당을 찾아 빌고
절하는 사람들이나, 정한 떠놓고 달을 쳐다보며 빌고 비는
머니들도 그들 나름의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기독교
인들이 있다.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또
기도를 한다. 금식을 하기도 다. 성경에서 형제들아 만일 사람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믿음이
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야고보서 2장 14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26절)라고 말씀
하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정한 놓고 하늘에 비는 아낙네의 믿음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빛이는 ‘참믿음’,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바란다. 참믿음을 가진 사람은 위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야 한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해야겠지만 그것만으로 충
분한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가 다빛에게 준 십계명에도 충실해 한다.
부모를 한 몸을 이룰 아내를 사랑해야 며, 미래를 준비하
며, 혼자 뛰어 1 하는 사람이 되도록 력해야 하고, 부분과 전체
모두 있어야 하며,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수평적 고를 하며,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해야
다. 항상 나의 이익만을 각하여 대접 모르며, 정직과 성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배우자나 가족을랑하지 않으며, 전체를 생각지 않
자신만을 생각하고, 신의 미래 대해 자신이 계획하지 않고, 기독
인인 것만을 자랑스러워하며, ‘구하라 주실 것이다.’라고 성경 구절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다빛아! ‘참믿음’, ‘참
하나님’이 할아버지가 다빛에게 십계명의 알파와 오메가요,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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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는 77세의 나이가 2019년 지금 ‘성경을 쉽게 접근하기
위한 지침서 - 경영학 교수가 리해본 신-구약의 핵심 -’
(http://bghong.hardfree.net/hbible.htm) 이라는 방대한
고를 끝맺음하면서 ‘참 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깨우침이 행되어야 한다 신념이 더더욱 확고해졌
다. 과연 무엇이 현대 기독교인들의 문제일까?
2. ‘참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기복적 마음을
지니도록 만드는 지도자들과 렇게 믿고 따르
성도들이 문제다.
예수님이 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시기 전후 성경에 등장하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지도자 격인 대다수 선지자,
예언자,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 두개인 등과 하나님 성들
모습을 살펴보라. 과연 이들이 하나님께서 율법이나 성경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고 행하라고 명하신 말씀들을 올바
전하고 행하고 있었던가?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1장에서 당시 하나님 백성들의
태를 급박한 심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는 이 땅의 하나
나라 이스라엘(현대의 교회)이 위에서 판받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울이라. 여
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귀는 그 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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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성이요 행악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시온 포도원의 대같이, 참외밭의 원두
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 셨더면 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1:2-9)
이사야는 속해서 이스라엘이 심판받게 된 이유에 관해
술하였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하나님의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
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
라. 너희가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
였느냐. 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식일과 대회
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
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때에 내가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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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가득함이라.’(사1:10-15) 요약하면 하나님이 이스
라엘을 심판한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각하기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 잘못 판단한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사야는 이어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을 설명한
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16-17)
이사야는 인간이 각하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 하시
것’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바르게
나님이 신 행동지침을 따라 행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메시지는 이사야만이 전한
것이 아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 미가가 전한
말들도 들어 보라.
예레미야의 말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어도
듣지 못하는 미련하고 각없는 백성들아, 들어라. 어째서
희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어째 희가 에서 떨지
않느냐? 내가 모래 다의 한계를 정하 것으로
원한 경계를 삼아 이상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아무리
다가 넘실거리며 파도가 쳐도 그것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집 세고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를 배반하고
돌아섰다. 내가 너희에게 때를 따라 을비와 봄비를 려 주
수하는 절을 주었으나 너희는 나를 존중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 때문에 내가 주는 좋은
복을 빼앗기고 말았다. 백성들 가운데는 새를 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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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치는 사람처럼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악인이 있다.
새장에 새가 가득하듯이 그들의 집에는 사기 물건들이 가득
하다. 그렇게 해서 그들 세력 있는 자가 되어 먹고
름이 번질번질하다. 또 그들의 악한 동에는 끝이 없어서 고
아들의 소송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해 주지 않으며 가난한 자들
의 권리도 옹호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을 보고서도 어떻게
그들을 벌하지 않겠느냐?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
냐?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땅에 섭고 놀라운
벌어지고 있다. 예언자들은 거짓된 것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예언자들의 지시에 따라 다스리고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으니 결과는 뻔한 일이다.'(예5:21-31) ’여호와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성전 입구에서 서서
선포하라. 여호와께 경배하려고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전능하신 여호와,
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생활 방식과
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계속 이곳에 살게 겠다.
너희는 성전이 이곳에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믿
지 말아라. 너희가 만일 진정으로 생활 방식과 실을 고치고
이웃에게 공정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땅에서 없는 자를 죽이지 않으며 다른
들을 섬겨 지금처 너희 자신을 해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
상들에게 땅에서 너희가 계속 하겠다. 보라,
너희는 헛된 거짓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전에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도 성전에 들어와서는 앞에
서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니 이것은 너희가 모든 더러운 일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냐? 너희 눈에는 나의 성전 둑의 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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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느냐? 나는 너희가 하는 일을 켜보았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너희는 내가 경배받을 예배처로 제일
택한 로에 가서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떻게 했는지 알아보아라.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모든
일을 행하고 있을 때에 내가 너희에게 거듭 말했어도 희는
듣지 않았으며 내가 너희를 러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의지하는 나의 성전, 내가 너희와 너희
상들에게 바로 이곳에 내가 실로에서 것처럼 행할
이며 내가 너희 형제 에브라임 자손에게 행한 것처럼 앞에
너희를 아낼 것이다. 예레미야야, 너는 백성을 하여
기도하지 말아라. 그들을 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아라.
내가 네 기도를 듣지 않을 것이다.‘(예7:1-15) ’여호와께서
백성에 대하여 이렇게 씀하셨다. 그들이 나를 떠나서 방황하
기를 좋아하고 자제하지 않으므로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
겠다. 내가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죄에 대하여 그들을 벌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을
복해 라고 기도하지 말아라.‘(예14:10-12) 지금 우리들의
실로와 예루살렘 성전을 문제 삼으시며 기도도 하지
말라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가?
호세아의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다른 사람을 뜯거나
난하지 말아라. 너희 제사장들아, 내가 너희를 책망한다. 너희
낮 비틀거리며 너희 예언자들도 너희와 함께 비틀거리므
로 내가 너희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이 망하는구나. 너희 제사장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
으니 나도 너희를 버려 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며
너희가 너희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렸으니 나도 너희 자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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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릴 것이다.’(호6:4-6) 백성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을 호되게 꾸짖고 시는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가?
아모스의 말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
아 너희는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 가서 더 많이 범죄
하며 아침마다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3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빵을 감사제로 드리고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제를 자랑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것 너희가 하고
었던 일이 아니냐?’(암4:4-5) ‘여호와께서 씀하신다. 나는
종교적 행사를 싫어하고 경멸하며 너희 모임을 기뻐하지
는다. 너희가 나에게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나 식으로 드리
제를 드려도 내가 받지 않을 것이며 살진 짐승으 화목
제를 드려도 내가 거들떠보지 않을 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노래 소리 그쳐라. 너희 비파 소리를 내가 듣지 않을 것이
다. 오히려 너희는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의를 마르지
않는 시내처럼 흐르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40
동안 광야에서 정말 나에게 희생의 제물과 곡식의 소제물을
렸느냐? 너희는 너희 손으로 만든 너희 임금 신 식굿과 너희
별 신 기윤을 메고 다녔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다마스커스
밖으로 사로잡혀가게 할 것이다. 이것은 전능한 하나님 나
호와의 말이다.'(암5:21-26) 지금 현재 우리 기독교인들은 매주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고 교회의 절기를 성대하게 키며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가의 말이다. ‘내가 무엇 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불에 태워 바칠 번제물로
송아지를 가지고 앞에 나아갈까? 내가 수천 마리
양이나 물처럼 많은 감람기름을 가지고 간다면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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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서 기뻐하실까? 허물과 혼의 죄를 위해 몸의 매인
맏아들을 바칠까? 람들아, 여호와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에게 보이셨다. 그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일을
행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보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하나님
교제하며 사는 것이다.’(미6:6-8)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다가오지 는가?
하나님은 구약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리에게 같은
시지를 주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
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나님 앞에서는 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라고 하셨다. 과연 현재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진정 살고 있
는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까지의 기간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보인 행태들도 살
펴보자. 마틴 루터를 비롯 개혁자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
수밖에 없었던 중세 암흑기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만행에
까운 행태에 관해서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교개혁의 기폭제가 되었던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위해 면죄
부를 팔았던 교황 레오 10세의 사건이야말로 하나님과는
동떨어진 기독교 지도자들의 극단적인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
다. 사제들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기부금을 내면 죄를 용서받
을 수 있습니다. 돈이 이 상자 속에 짤랑하고 들어가는 순간,
영혼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게 됩니다.”라고 설교했다
고 전해진다. 성도들은 그 말에 순복하며 따랐다. 더 이상 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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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500여 시간이 렀다. 과연
현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예수가 십자가상
에서 운명하시 성전의 휘장이 찢기고 우리 성도 모두가 제사
장이 되었다.(만인 제사장) 과연 제사장 나를 포함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우리는 신구약 시대의 성직
자들과 비교했 그리고 중세 시대의 사제들과 비교했을
과연 변화가 있었는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 현대 기독교인
들을 보시며 ‘심히 좋아졌더라.’ 말씀하시며 만족해하고 계실
까?
3. 은혜와 복의 개념을 포함하여 성경의 가르
침에 대한 잘못된 개념인식이 문제다.
현대 기독교인들의 기도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축복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달라’는 문과도 같은
도의 말이다. 먼저 결론부 말한다면 나님께서는 우리 인간
들에게 주실 모든 은혜와 복을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기 전에
이미 전부 주셨다는 엄연한 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혜와 복을 상 모든 람들에게 이
값없이 주셨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엇 달라는 것인가?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없이 주신 은혜를 크게
누어 1) 조의 은혜와 2) 구원의 은혜로 구분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창조의 은혜와
원의 은혜를 성경을 분명히 확인 할 있다. 나는 구약
초점은 ‘창조의 은혜’에, 신약의 초점은 ‘구원 은혜’에
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2:1) 하나님은 6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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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사람을
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
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하시니 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짐승을 종류대로,
가축을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나님의 상대
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
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
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
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시니라. 하나
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리라. 땅의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 주노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섯째 날이니라.(창1:24-31)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짐승과는 구별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람을 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
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에게는 짐승들은 가질 없고
나님만이 가지신 ’창조의 은혜‘를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짐승들 비교해 보았을 가장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어 꿀벌과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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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해 보자. 꿀벌들은 어떤 누구에게서도 교육을 받지 않았고
아무런 설계도 없이 최대의 면적을 활용할 있는 육각형의
벌집을 만들어 낼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곤충학자들은 그저
막힐 뿐이라고 감탄한다고 한다. 꿀벌들과 비교해 사람들은
벌집 조의 수수께끼를 1965년에 이르러서야 헝가리 수학자
페예시 토트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고 한다. 꿀벌들이
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그것을 지금도 사람들은 특정의 전문가
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간을 그렇게
조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승과 달리 창조의 은혜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창
이후 지금까지 동물들이 못한 무한한 력을 니고
창조의 능력(여기서 하는 창조의 능력이란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조하신 창조의 개념과는 구별되는 의미이다.)
마음껏 휘하고 있다는 실을 인정해야 한다. BC 2091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선두주자로 갈대아 우르 지역에서 아브람
선택하시기 전부터 이미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 모두
에게 공짜로 주신 창조의 력을 발휘하여 소위 세계 4대 고대
문명을 꽃피웠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나는 금 이 글을 미국
워싱톤 켄모아 둘째 아들 집에서 쓰고 있다. 오늘은 한국
시간으로 주일이어서 내 아내와 함께 스마트폰과 대형 스크린
연결지어 8,300Km 떨어진 서울 여의도침례교회 3부
배에 참여했다. 나는 마치 본당 예배에 지각했기 때문에 비디
오방에서 예배를 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랍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조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나님이 우리에게
창조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실감
했다.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어야만 물질적 축복
받을 있고 예수를 믿으면 장수 한다는 못된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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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시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을 때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할 있는 창조의
능력까지를 주셨다고 굳게 믿는다. 사람들의 단한 노력이
으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찾아낼 있는 단서
들을 곳곳에 숨겨 놓으셨 것이라고 각한다. 아랍 산유국들
러싸여 으면서도 오일과 가스 부족으로 고전하던 이스
라엘이 2,000년대 들어서서야 산유국이 되었다. 산유국이
있었던 것은 성경 숨겨져 있는 서에 의해서였다고
하니 자못 흥미롭다.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40 광야 생
활 끝에 모세가 스블론, 잇사갈 그리고 아셀에게 주는 축복의
말속에 숨겨져 었던 단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도되었다.’
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밖으로 나감을 기
뻐하라. 잇사갈이여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
로다.’(신33:18-19)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쁨이 되며 그의 발이
름에 잠길지로다.’(신33:24)
우리는 원시시대로부터 오늘의 전자시대에 이르기까지 인
들이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단서들을 얼마나 많이 찾아내었는
가를 역사를 뒤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돌을 사용하던
인간들이 철과 동을 찾아내었고, 땔감으로 나무와 석탄을 사용
하던 인간들이 석유와 원자력을 찾아냈다. 사람들은 플루토늄
우라늄을 찾아내어 핵무기를 제조할 있는 능력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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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도 했다. 앞으로도 간들이 어떤 보물찾기를 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겠는가? 하나님이 혜와 축복의 단서들을 계속
찾아내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물론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 있고 오병이어와
이적을 보이실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성경
을 보면 구약과 신약 시대에 수많은 이적들이 장한다. 출애
시의 가지 재앙 사건, 홍해 육지처럼 건넌 사건, 만나
메추라기 사건, 반석에서 물이 솟아 사건, 태양이 늘에
멈춘 사건,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적들이 실제로 있었다. 그러
나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정확히 알
있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성 말씀’의 진의를 왜곡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에서 보여준 이적들은 하나님을
었던 시대에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시기
보여주신 사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 회중이 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 나를 믿지 겠느냐.‘(민
14:10-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말대로 사하노라.
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광이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번이나 나를 험하고 목소
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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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14:20-23) ’여호수아가
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갈에 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
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
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너희
앞에서 마르 하사 너희를 너게 하신 것이 희의 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4:20-24)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가서 청하되 려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수께서 이르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
아니하리라.‘(요4:46-48)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때부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르되 비여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
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사람이나 그
모의 죄로 인한 것이 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1-5)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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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아버지의
름으로 행하 들이 증거 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양은 음성을 들으며
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2-27) 지금
시대에도 변함없이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킬 수 있
력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여덟 살쩍 목격했었던 교회 년의 행동과
관련하여 깨달아지는 것이 아직도 전혀 없는가?
한국의 이어령 교수가 나님을 믿 것은
민아 때문이며 그에게 일본에서 세례를 분은 하용조 목사였
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어령 교수보다 훨씬 젊은
민아와 하영조 목사님은 벌써 세상 사람이 니지만, 이어
교수는 현재 투병 중이기는 하나 85세 이에도 건재하
계신다. ’그러나 먼저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자로서
먼저 많으니라.‘(마19:30, 10:31)라는 경구절을
지고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는가? 마찬가지로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물질적으로 매우 부유하게 사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너무나 많이 있다. 재물 얻을 능력은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에게 주셨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다. ‘그러나 네가 음에 이르기를 능력
손의 힘으로 내가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물 얻을 력을 주셨음
이라. 이같이 하심은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7-18)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모두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것이다. 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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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만이 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의지에 의해 마음
먹고 노력만 하면 공부 할 수 있고, 건강하게 살 위해
건강관리를 스스로 있는 은혜를 이미 주셨다. 그것은
나님을 믿는 인에게만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해당하는 하나님
은혜요 리이다. 욥의 말을 들어보라. 욥은 고통 중에서도
이와 같은 세상의 현실을 전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보면 놀
라리라 손으로 입을 가리리라.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
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들의 집이
안하여 두려움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양 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은 고와 수금으로 래하
즐기며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내다가 잠깐
이에 스올에 려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
하나이다. 전능자가 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욥21:5-15)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유의지에는 최초 아담과
하와가 감히 하나님이 금한 약과를 따먹을 정도의,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 일을 후회하시도록 정도의 강력한 힘이
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
혜롭게 만큼 탐스럽기도 나무인지라 여자가 매를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3:6-7)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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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명령을 행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밤을
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삼상15:10-11)
기복신앙이 한국 기독교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성도들에게 기복신앙을 주입 시켜 주고 있는 현실은 왜일까?
기독교인들의 입에 즐겨 담는 은혜 이외에 복, 기도, 금식 등
념들도 당히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일는지 모른
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은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8복이라 부르는 산상수훈이다. 마태복음 5장의 8복에
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누가는 누가복음 6장에서 4개의 복과 4
개의 화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것 8복이 정하고 받는
비결처럼 가르친다면 이것은 잘못된 신학의 하나가 것이
닐가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씀을 부동산으로서의 땅을 얻을 것이라고 설파하는 이름난 설
교자를 적도 있었다.
‘복’이란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로서 현재 삶에서의 최고의
물질적, 심리적인 고의 복을 의미하나 히브리어로는 ‘아쉐르’
하여 삶에서 얻어야 가장 중요 가치, 무엇을 얻
아닌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의 ‘복’은 ‘아도니아께서 함께 시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다. ‘복이 나니’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의 의미이다.
므로 ‘심령이 가난한 복이 있나니’는 ‘심령 가난한 자에
게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의 미가 된다. 하튼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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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예수는 8가지의 ‘복이 있나니’의 가르침을 공생애 첫 번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아마도 이 8복은 그리스도의 제
자로서 우리 갖추어야 내지는 하나님 백성을 위한
삶의 규범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 생각한다. 8복이 세상적
복을 의미하지 않음은 명하다. 세상적 축복은 각자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9:10) ‘우리가 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그리스도
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하여 자기 양식을 으라 하노라‘(살
후3:10-12) 우리가 진정 세상에서 재물 기를 원한다면 정주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처럼 열심히 생각하고 일하면 것이
라는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기독교인에게 기도는 호흡과 같이 매우 중요하다. 과연 우리
기도에 대해 올바 해를 갖고 있는가? 오늘의 기독교인
들은 ‘기도해 주세요.’ ‘기 제목 올려 주세요.’ ‘수능시험을
위해 기도 모임을 갖겠습니다. ’기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 기독교인 대화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기도이
다. 수님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가르치셨다. ’또 너희는 기도
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말라. 그들은 람에게 보이
려고 회당과 거리 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
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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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
지께서 갚으시리라. 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생각하느니라.
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리가 우리에게 죄지 자를 사하여 같이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 시험에 들게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5-13)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
치신 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께서는 금식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금식할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
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6-18)
성경에는 ‘장로들의 전통(the tradition of the elders)’이라
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장로들의 전통이란 하나님이 주신
씀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 규칙을 의미한다. 장로들의
유전(전통)은 외형상 별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나 인간의 생각
나님의 시와 동일 수준으로 생각하였다는 점과 율법의
목적과 그 정신을 저버리고 외형적인 세부 규칙들을 번거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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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로 상세히 규정해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순종과 사랑을 버리고 인간의 위선과 교만으로 나아
갔다고 하는 점에서 장로들의 유전은 치명적 오류를 범했다.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
나이까.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
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
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
거늘 너희는 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
유익하게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기만 하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
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1) 오늘의 교회도 사람들이
교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을 범하고 있지는 은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초상화가 인쇄된 신문 조각마저
상화하는 북한 주민들처럼, 내가 어렸을 회에서 발행한
주보를 손상하거나 주일날 무엇을 먹으면 그것도 죄가
된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 부속 초등학교에서 돼지고기를 급식했다
고 큰 소동이 일어났던 적이 실제로 있었다. 성경에 돼지고기
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돼지는 굽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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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희에게 부정하니라.‘(레11:78) 이처럼 돼지고기를 먹지 라는
구절이 성경에 분명히 다. 지금도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나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의 진의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대로 적용하려는 우를 범하
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지 지금까지
소를 잡아 번제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을 적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당시나님의 나님 됨을 보이시기 위해 많은
이적을 보여주셨듯이 이스라엘 성에게 율법을 주셨던 이유
또한 있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없느니라 율법으로 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죄가 율법 전에도
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
였느니라.‘(롬5:13)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 율법을 셨던
목적은 죄가 무엇인지를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류의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
시대는 버렸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
하느니라.‘(눅16: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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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갈2:1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희는 그
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너희
령의 인도하시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아니
하리라.‘(갈5:18) ’이제는 우리가 매였던 것에 대하 죽었으
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예수가 성육신하심으로 율법이
성된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각하
말라 폐하러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사랑은 이웃에 악을 행하지 니하나니 그러므로
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온 법은 이웃 랑하
기를 자신 같이 하라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아담 창조 이후 하나님을 믿고 믿 않고를 떠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조의 은혜를
없이 부여받아 자유의지에 의해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창조
이후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졌던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물질
문명을 꽃피워 왔으나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의 삶을 살아
왔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시 메소포타
미아 문명이 찬란했던 갈대아 우르 땅에서 아브라함 사람을
선택해 위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로 하셨다. 그러나
나님 나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안
타깝게도 세상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역시 불순종의 삶을 계속
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창조의 은혜‘에 이어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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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 ‘구원의 은혜’이다. ‘아브라함과 다윗 자손 예수 리스
도의 세계라.’(마1:1) 구약 세기 시대로부터 말라기 대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의 끝없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시켜 십자가의 보혈로 인류 구원의 시대를
여셨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
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
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구원의 은혜는 창조의
은혜와는 달리 모두가 얻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한다면 구원의 은혜 역시 세상 사람 모두에게 주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구원의 은혜는 창조의 은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개인 스스로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자기 것이 될 수 있다. 구원의 은혜는 믿음의 문제이다. 예수
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어려서부터 성
경을 알았나 성경은 능히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하느니
라.’(딤후3:15)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유의해야 점이
있다. 사람의 행위로 구원받을 있는 것은 아니나 행함이
믿음은 참믿음이 아니며 구원에 이를 다는 엄한
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두에게 조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값
없이 주셨음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은혜 아래 살고 있음은
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것으로 만들 있을
것인 가의 여부는 전적으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각자
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세상에서의 성공적 삶도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도 결정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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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동지침대로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구약 성경의 전체구성을 분석해보면 과거-현재-미래의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다. 창세기로부터 에스더까지는 역사기
으로 과거 인간들의 불순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 이사야로
부터 말라기까지의 지서는 순종하든가 불순종 인간들에
미래의 심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구약의 중간 부분은
기-시편-잠언-전도서-아가 다섯 시가서 부분으로 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구약 성경의 과거와 미래 부분은 대체로
믿음의 영역인 데 비해 현재 부분은 행함의 영역이다. 시가서
부분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요하다.
욥기는 우리들에게 ‘잘못된 신학에 현혹되지 말라.’는 분명한
행동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욥과 엘리바스, 빌닷, 소발
친구들 간에 이루어진 논쟁과 뒤늦게 등장한 엘리후의 주장들
분명히 부분적으로는 옳았다. 그러나 폭풍우 속에 하나님이
등장하심으로 그들의 주장이 잘못된 주장들이었음이 밝혀진다.
욥기는 현대 교회의 기독교인들도 왜곡된 설교 말씀이나 장로
들의 전통과 같은 관습적 행동에 휩쓸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아야 것을 가르치고 있다. 150편으로 이루어진 시편은 우리
들에게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찬양 하라.’는 행동지침을
시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찬양해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시가서의 번째는 잠언이다. 잠언은 잠언답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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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있는가에 대한 많은 행동지침을 준다. 특히
언은 이어지는 전도서와 아가와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
해서는 현실 세계의 기초 단위가 되는 가정, 그중에서도 부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행동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만일 독교인들이 성경을 통해 ‘부부 사랑 없는 앙은
참된 신앙일 없다.’는 교훈을 못했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5. 위에서의 삶도 매우 소중한 것임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세상에 태어나 77년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이제는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하실
까? 나님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명히 창조
하신 뜻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 여섯째 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말씀하셨다.
님께서는 인간들의 불순종으로 격노하셔서 노아의 8가족을
외하고 모두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도 ‘하나님이 노아와 그
들들에게 주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고 재차 말씀하셨다. 인간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무가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내가 영광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라.
내가 지었고 그를 만들었느니라.’(사43:7) ‘그런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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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하라.’(고전10:31)고 하셨다. ‘빨리 천국 으면 좋겠다.’는
성도들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이 과연 ‘너 매우 믿음 좋은
성도구나!’ 감격하시며 기뻐하실까?
그렇다면 하나님 백성들은 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것인가?
잠언에 기록된 이다. ‘네가 어서 얻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그녀와 함께 거워하라.’(잠5:18) ‘마른 각을
어도 화목 하는 안에 먹을 것이 많으면서 다투 것보
낫다.’(잠17:1) ‘아내를 얻는 사람은 좋은 것을 얻고 호와
은총을 받는 자이다.’(잠18:22)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의
파멸이며 잔소 심한 아내는 사이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다. 집과 재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잠19:13-14) ‘다투기 좋아하는
자와 한집에 사는 것보다 차라 옥상 한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잠21:9, 29:24)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는
날에 계속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 이런 여자를 다스리는
바람을 다스리는 것과 같고 손으로 기름을 켜잡는 것과
같다.‘(잠27:15-16) 아내와 사는 삶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잠언 기자는 결론적으로 현숙한 아내의 덕목을 붙이기까지
였다. ‘누가 현숙한 아내를 얻겠느냐? 그녀는 진주보다 더 소
중하다. 그런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일평생 남편에게 선을
하고 남편을 해치지 않는다. 그녀는 양털과 삼을 구해 부지런
하며 상선처럼 데서 양식을 가져오고 날이 밝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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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여종에
일을 일러 주고 나가서 밭을 보고 생각해 두었다가 그것
사며 자기가 돈으 포도원을 만들고 언제나 강인하고
근면하며 열심히 일한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이 유익한
알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손수 물레질을 하여 실을 뽑고
를 짜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녀는 모든
족에게 입힐 따뜻한 옷을 마련해 놓았으므로 겨울이 닥쳐도
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침실을 아름답게 꾸미며 아름답고
고운 모시옷과 자색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남편도 지도급
사로 알려져 존경을 받게 된다. 그녀는 옷과 허리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넘기기도 한다. 그녀 능력과 품위가 있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며 말을 지혜롭고 친절하게 하고 자기 집안일을
잘 보살피며 놀고먹지 않는다. 그 자녀들은 자기 어머니를 고
맙게 생각하며 그 남편도 그녀에게 세상에는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이오. 하고
칭찬한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여성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찬을
받을 것이다.‘(잠31:10-31)
다음은 세상의 헛됨을 거듭 언급한 전도자의 말이다. ‘사
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보다 좋은
없으나 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을 깨달았다.’
(전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수고하는 모든 일에 만족
느끼는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전3:13)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 짐승의 영은 땅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입증할 있겠는가? 러므로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거움을 느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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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죽은 후의 사건을 있도록
람을 다시 살릴 자가 누구인가?‘(전3:21-22) ’나는 하나님이
주신 짧은 일생을 사는 동안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끼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며 이것이 인간의 운명임을 알았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부와 재물을 주셔서 그것을 누리
하시며 복을 자기가 수고 것을 즐길 있게 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을 채워
주셨으므로 그는 인생이 짧다는 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전5:18-20) ’너는 가서 기쁨으 음식을 먹고
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하나님은 가 하는 을 이
미 인정하셨다. 너는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하여라. 세상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덧없는 삶을
사는 동안 너는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인생을 겨라. 이것은
세상에서 네가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전9:7-10) ’잔치는
즐기기 위한 것이며 포도주는 흥을 돋구기 위한 것이지만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전10:19)
잠언과 전도서 기자는 위에서 사람들이 어떻 살아야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돈은 수고해서
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며, 하
나님이 짝지어준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며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시가서의 지막 책인 아가서에서는 아름다운
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도서 기자의 결론이다. ’이제 모든 것을 들었으니 결론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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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라. 이것이 사람 본분이다. 선하건 악하건 하나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실 것이다.‘(전
12:13-14) 이제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
가에 대한 감(感)이 오는가?
6. 금송아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자.
구약에 번의 금송아지 건이 있었다. 사건은 모세
호렙산에 올랐을 때였다.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론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 주시오. 우리 이집트에서 끌어낸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소식이 없소 그러자
아론이 그들에 여러분의 아내와 자녀들이 귀에 달고 있는
고리를 빼어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였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가져오자 아론이 그것을 녹여 금송
아지를 만들었다. 그때 성들이 이스라엘아, 이것이 너를
집트에서 도해 너의 신이다.! 하고 외쳤다. 아론은 이것을
보고 금송아지 앞에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명절이다.
선포하였다. 다음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불로 태우는
번제와 화목제 드린 다음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난잡하
뛰놀았다.‘(출32:1-6)
금송아지 사건은 이스라엘 왕조가 남북으로 갈라섰
을 때 북이스라엘 여러보암 왕에 의해 일어났다. ’만일 내 백
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되면
들이 다시 유다의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고 나를 죽일 것이
다. 그래서 그는 자기 보좌관들과 의논한 끝에 금송아지
리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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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러 예루살렘까지 올라갈 필요가 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이집트에서 여러분을 구출해 들을 보십시오!
그리고서 그는 그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세워 두었다. 이 일이 죄가 것은 백성들이 엘이나
가서 우상들을 섬겼기 때문이었다.(왕상12:27-30)
두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자손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 성들이요 오늘에 비견
하면 교회의 도들이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우상이라 생각
하지 않았고 송아지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라 생각했
으며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참 하나님’을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억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신 예수께서 주신 새
명은 전혀 개의치 않고, 살면서 서로 사랑해야
부부가 화목하지 않고 서로 미워하고 욕하면서도 예배와 기도
에만 몰두하고 기도원을 찾는 기독교인들이 과연 참 하나님을
믿는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예배와 기도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형제 화해이며 부부 화목이다. 우리는 금송아지 하나님을
믿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
에게 원망들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 리고 와서 예물을 드려라.’
(마5:23-24)
7. 성경 사랑 이야기를 마치며
모태 적 교인이었던 내가 77년 동안 기독교와 함께 살아오
어느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아담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켜 보며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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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걱정을 하게 현실이 아이로니컬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름대로 성경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
생각해 본다.
천지를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나이
살쩍 교회 앞 골목길에서 한 청년이 앉은뱅이 지에게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외쳤을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이적을
이시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같은 이적을
현실 세계에서도 나타내실 있고, 종종 이적 보이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속하고 일까? 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선황당을 아낙네의
마음 자세로 금송아지의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는 생각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모세의 아론까지도 금송아지 하나
님을 만든 전력이 있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른다.
과연 종교개혁 후의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 전후 시대의
제사장이나 중세 시대의 사제들과 교해 았을 다른
종교개혁이 필요 없을 도로, 그리고 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아도 정도로 전적인 순종의 삶을 살며 말씀 바르
게 전하고 있을까? 만일 그들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다면 아담 이후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그것은 대단
교만일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신학에 현혹되지 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욥기 기자는 인간의 교만에 대해 엄청난 말을 하였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
장부처럼 허리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답할지니라. 네가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의를 세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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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
님처럼 천둥소리를 내겠느냐.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들을 함께 진토
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그리하면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잠
40:6-14) 너무나 엄청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인간의
교만은 끝이 없다. 인간의 교만함을 낮출 능력이 인간에게
다면 십자가의 보혈 없이도 스스로 구원할 다고까지 하나
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인가? 이렇게 교
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도 내가 얼마 교만
말을 하고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신학적 주장을
펼치며 욥과 논쟁을 벌였던 친구들도 나와 같은 들을
마구 뱉어냈었으니까! 엘리바스의 말이다.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
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길에 빛이 비치리라. 사람들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욥22:26-30) 엘리
후도 욥의 교만을 언급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 하나님은 람보다 크심이니라.
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람은 관심이 없도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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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욥33:12-17)
인간의 교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람들
모두가 교만하다. 잠언 기자는 ‘교만은 패망의 봉이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라 했고, 예레
미야는 너희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13:15)고 했다.
말라기 기자도 교만에 대해 무서운 경고를 날렸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뿌리와 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다.’(말
4:1)
자신의 교만을 심히 염려하며 ‘나의 성경 사랑 이야기’의
끝을 맺으려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민으로(믿음의 조상으
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나 아브라함의 후손인 에서(성경에
서는 에돔 또는 아말렉으로도 표현한다.)는 미워하셨음을 마음
새겨야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
하였더라.’(출7:14-1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
라.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되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같이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땅이 황폐하리니
호와인 줄을 무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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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족속은 불이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것이요
족속은 지푸라기가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
말씀하셨음이라.‘(옵1:18)
에서는 태어 때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인
틀림없었으나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역시 모태로
부터 기독교인이었으니 하나님의 선민이 틀림없다고 그냥 안심
하고 살아도 것인가? 이제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더욱 성경을 사랑하며 끝없이 노력해야 것으로 생각하
생각한다. 나는 77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은혜‘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세상에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부하고 있다. 러나 만일 궁극
목적이어야 ’구원의 은혜‘를 성취하지 한다면 결국은
실패한 삶으로 끝나게 것이라는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진정
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제게 태어날 때부터 주신
력을 활용하여 77세 지금까지 세상에서 족함 없이
있었습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결과 아름
답고 보람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로지 하나님
태초에 주신 ‘창조의 혜’ 덕분이었음을 고백하
사드립니다. 이제 남은 여생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주신
‘구원의 혜‘를 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내와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만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겠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리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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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을지어다 아멘‘(계22:21)
2019년 3월 14일 미국 Kenmore 손녀 루하 집에서
보다